2014년경에 썼던 것을, 2016년경에 수정했던 글.
그때 글은 너무 아쉽게도 전부 지웠었지만, 운 좋게 남아있는 글이 있어서 올린다.
당시에 소재 키워드를 랜덤으로 주는 프로그램을 돌려 [취중진담][네가 행복해졌으면 해]라는 키워드 기반으로 썼던 글이다.
예전부터 알코올에는 약했다. 그것이 단순히 술을 평소에 자주 먹지 않아서인지, 원래부터 그런 것인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게 있어서 술은 절대 '기호(嗜好)' 식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칼칼하고 씁쓰름한 그 액체를 자처해서 위장에 들이붓는지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술에서 깬 후의 불쾌한 느낌과 두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순간의 쾌락을 즐기고자 하는 멍청함에는 넌덜머리가 났다. 게다가...술은 사람의 사고력을 마비시킨다. 나 같은 두뇌파에게 그건 일종의 재앙이나 다름없다. 육체를 마비시키는 독약보다, 뇌를 마비시키는 술이 나는 더 역겨웠다.
그런 면에 있어서 버기가 상당한 알코홀릭인 것은 불행스런 일이었다. 술은 물론이거니와 술을 좋아하는 사람 자체도 곱게 보이지 않는데, 나의 협소한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나마 가장 가까운 사이, 아니... 그 이상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남자가 그런 타입이라니. 게다가 더욱 언짢게도 버기에겐 술을 권유하는 습관마저 있었다. 거절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여러 번 코앞으로 맥주잔을 들이밀어 오면 없던 짜증도 치솟는 것이었다.
사설이 길었지만, 내가 이런 말들을 늘어놓고 있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바로 지금 내 눈 앞에 가장자리까지 빠듯히 채워진 위스키 잔이 찰랑대고 있기 때문이다. 밖에서 창문을 때리는 빗줄기와 쾅쾅대는 천둥 소리 때문에 도진 편두통만으로도 충분히 신경에 거슬리는데, 이 놈의 술잔 때문에 더더욱 골이 아파오는 느낌이었다.
"안 마신다고 이야기 했잖나. 태풍 때문에 배가 흔들려서 속까지 메스껍다고... 정말 자네는 포기할 줄을 모른다네. 나쁜 의미에서 말이네!"
그러나 버기에게 마지막 문장은 들리지 않는 듯 했다.
"뭐~ 이 몸이 좀 끈기가 있긴 하지. 갸하하하! 그보다 뭘 모르는 군, 파트너. 멀미에는 뭐니뭐니해도 술이 제격이거든! 화끈하게 한 번 들이키면 끝날 일이잖아! 뭘 버팅기고 있냐?"
벌써 몇 잔은 걸친 듯 붉어진 그의 얼굴이 위험할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코를 간질이는 버기의 숨결에 한 순간 될 대로 돼버리라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동강나서 둥둥 떠 있던 손에서 위스키 잔을 잡아채어 단숨에 마셔버렸다. 순식간에 올라오는 취기와 더불어 치솟는 옅은 불쾌감이 정신을 몽롱하게 했다. 머리가 더더욱 아파왔다.
"후...우, 돼...됐는가? 이제 불만 없겠지?"
나는 턱에 흐른 위스키를 코트 소매로 대충 닦았다. 제대로 발음이 되지 않는 입술을 겨우 움직여 질책 섞인 말을 내뱉었다. 버기는 내가 그걸 원샷해 버릴 줄은 미처 몰랐는지, 잠깐 동안 멍청하게 눈만 껌벅이고 있다가 다음 순간 마치 마술이라도 부리듯 어딘가에서 잔과 병을 꺼내오더니 컵에 투명한 액체를 가득 따랐다. 저것도 술인가? 짧은 의문이 떠올랐지만 너무 당연하다 못해 멍청한 질문에 고개를 내둘렀다. 버기가 술이 아닌 음료를 가지고 다닐 리가 없지. 보드카나 청주 같은 종류가 아닐까.
"어이, 네놈 취한 것 같은데. 물 한잔이라도 먹고 정신 차려라, 파트너."
장난기로 반짝이는 눈은 그것이 결코 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멍청하긴, 저런 눈빛을 하고 권하다니... 저게 술인건 애라도 알 텐데. 아마 보드카일 터이다.
—하지만 정말로 물일지도.
아까 괜한 객기로 들이킨 술 때문에 목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갈증이 솟았다.
그래, 역시 물이다.
물이 틀림없다. 근거는 없지만, 왠지 물일 것만 같아.
나는 손을 뻗어 그가 들고 있던 잔을 잡아 올렸다. 알코올이 망쳐놓은 판단력을 맹신하고는 목구멍으로 액체를 곧바로 흘려 넣었다. 타는 듯한 감각이 훅하고 식도를 달궜다.
아, 이래서 나는 술이 싫다. 내가 평소에 비웃었던 우매한 짐승들과 다름없는 사고 구조를 가지게 만들기에...
이거, 도수가 엄청나게 높네만.
그 후로 흐려지고 왜곡되어 얼룩진 기억에서,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 잔을 마신 뒤에 멀쩡한 정신으로 내뱉은 말은 그것뿐이었다는 사실이다.
_
갤디노는 휘청이며 잔을 내려놓았다. 컵은 그 자리에서 작게 한번 빙글 돌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그가 고개를 살짝 들어 나를 마주 봄과 동시에, 이 몸은 그의 알코올 수치가 거의 한계에 달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꽉꽉 담긴 했지만, 겨우 두 잔 정도로 이만큼이나 취하다니 역시 샌님다웠다. 쓰러진 컵을 들어 다시 한번 보드카를 채워 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순순히 마시는 꼴딱서니가 그저 우습기만 했다.
갤디노가 주정을 부리기 시작하는 데에는 몇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임펠다운을 탈옥하고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나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호기심에 사로잡힌 채 그를 빤히 쳐다 보고 있자니, 갑자기 그쪽에서 눈을 맞춰 왔다. 취기 때문에 발그레해진 눈이 안경 너머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이 축축히 젖어 있었다. 영상 전보 벌레라도 챙겨둘 걸 그랬군, 녹화해서 평생 놀려먹어줘야하는데 말이지. 드디어 주정뱅이 짓이 시작되는구나 싶어 긴장하며 기대하던 찰나였다.
"버기, 나는 말야, 진즉에 행복해지는 건 그만 두었다네."
신세한탄이 나올 것이란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초장부터 꽤나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한 발언이구만 싶어 눈썹을 치켜떴다. 무슨 애새끼나 기집년도 아니고, 행복 타령이라니!
"바로크워크스 시절— 뭐, 시절이라고 해 봤자 반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 때의 나는 뭘 몰랐다네. 그저 나의 지략과 힘만 있으면 뭐든 다 잘 될 줄 알았지. ...나는 내가...무슨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다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진해서 위스키 병의 뚜껑을 따면서 그가 말을 이었다.
"내 앞길은 탄탄대로였다네. 그러다가 펑! 밀짚모자 자식이 나타났지!"
그 녀석이 펑, 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뚜껑이 튕겨나와 바닥을 굴렀다.
"밀짚모자에게 진 후로 곤두박질 친 인생은, 애초부터 실로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네. 그걸 그제서야 깨달았어. Mr.5나 미스 발렌타인을 한껏 비웃어주면서도, 내 뛰어난 지성을 과신했던 거라네. (미스... 뭐? 그 자식들이 누군데? 라는 물음이 혀끝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굉장한 자제력으로 질문을 삼켰다.) 밀짚모자 녀석에게 어이없게 패배한 죄를 물어 보스한테도 버림받고, 도망자로 연연하다가 해군에게 사로잡혀 임펠다운행까지... 내 삶을 이루고 있던 것이 한순간에 뭉개지고, 연고 없이 감옥에 갇혀 하루하루 고문을 받고. 그야말로 모든 가치관이 송두리 채 짓밟히다 못해 갈가리 찢어지는 몇 개월이었네."
그의 어조가 얼마나 무덤덤한지,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바로크워크스 해산— 나에겐 뉴스로 보고도 딱히 감흥조차 생기지 않던 기사였다. 그 원인이 죽일 놈의 밀짚모자인 것은 꽤 눈길을 끌었지만...당시의 이 몸에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건이었던 것이다. 기사에 뜬 Mr.3 시절의 그의 얼굴을 보면서도 털끝만큼의 흥미조차 가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뭐어, 든든한 부하들도 있고 잘생긴 얼굴도 있고 캡틴 존의 보물을 쫓으며 다시금 해적왕의 꿈을 꾸던, 감옥에 갇힌 것 외에는 꿀릴 게 없었던 이 몸과는 확연히 다른 마음가짐이었겠지. 그거야 어림잡아 알고 있었지만, 그걸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것은 또 달랐다.
"자네가 날 그 감옥에서 해방시켜 준 것은 물론이고, 또 자네와 내가 힘을 합쳐 고생을 한 끝에 탈출에 성공하면서... 내 인생에 자네가 비집고 들어온 것은 큰 행운이 되었다네. 아니 자네의 인생에 내가 비집고 들어갔다는 게 더 옳겠지. 사실 그렇잖나? 자네는 만약 내가 없었더라도 여전히 칠무해가 되었을 것이고, 여전히 이 커다란 해적단의 선장이었을 것이며, 여전히 전설의 사나이로 불려졌을 것이네. 하지만 나는..."
그는 다음 말을 잇기 힘들다는 듯이 잠깐 머뭇거렸다.
"나는...자네가 이 해적단을 나가라는 한 마디만 하면 당장에 해군들에게 쫓기는 신세라네. 천하의 임펠다운을 탈옥한 것도 모자라, 화권의 에이스 구출에 결정적인 도움까지 준... 그런데도 고작 임펠다운 레벨 2짜리의 약하기 짝이 없는 범죄자. 해군이 가장 기를 쓰고 노릴 만한 상대지. 게다가 이젠 자네가 없다면...신분을 세탁하고 해적 사냥꾼 Mr.3로서 몇 년을 살아온 나에겐 세상 천지에 아무런 연고도 인연도 없게 돼."
어떻게 입 발린 위로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갤디노가 말하는 것들은 구구절절이 사실이었다. 실은, 그가 입에 담기도 전에 누구보다 이미 잘 알고 있던 것 중 하나였다. 나의 소중한 ‘파트너’...그의 숨통을 쥐고 있는 게 나라는 사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곤 했다. 일그러진 지배욕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말야, 그런 정복 욕구는 해적으로서는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조금 웃음이 비져나올 뻔 했지만 그렇다고 그자식의 절망감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녀석이 불행해하는 건 이 몸도 싫으니... 꽤나 삐뚤어진 감정임을 자각하고 있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입술을 이상하게 일그러뜨리며 그의 말을 경청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미... 행복해지는 것은 포기 했다네."
그는 위스키를 한번 홀짝이더니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눈가가 살짝 짓무른 듯 했다. 그 피곤한 눈빛이, 마치 임펠다운에서 둘이 함께 다닐 때의 그것 같아 이유모를 짜증이 솟구쳤다. 나는 헛술을 들이마셨다.
"앞으로 평생... 평생 자네의 보좌로서, 오른팔로서... 자네의 옆 외에선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그리고 그게...뭐랄까, 그러니까..."
아, 젠장. 무게 잡는 건 질색인데.
나는 뒷통수를 신경질적으로 긁었다. 언제나 쓸데없이 진지한 것이 갤디노의 단점이었다. 결국 뭐야, 삶의 의미 운운하면서 그, 탁상...뭐였지? 아 그래, 탁상공론을 펼치는 개똥 철학자 놈들과 다를 게 뭐냐고. 왜 그렇게 생각이 많은 거야? 일단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잖냐, 인생이 좀 좆같아도 살아가는 수밖엔. 게다가... 지금 이 녀석이 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내게 짐을 지우고자 하는 개소리잖아? 다 포기한 듯이 얘기하면서 은근슬쩍 자기 삶의 무게를 내게 떠넘기고자 하다니 정말로 치사하고 비겁한 자식이 아닐 수 없다. Mr.3. 열등감과 패배주의에 찌든 놈 같으니라고.
"미주알고주알 시끄럽구만 네 놈, 쉽게 말하자면 내게 빌 붙어 사는게 쪽팔린다 이 말이잖냐?"
정곡인 듯 했다. 그는 아래만 응시하고 있다가 조금 분노를 섞어 입을 열었다.
"그렇다네...그게 나쁜가? 수치스럽다네. 나 자신으로서 살지 못하고 남의 시다바리로서 밖에 살 수 없다니..."
"시다바리? 우리는 파트너 아니었던가?"
"...그 호칭 따위 애초에 네놈이 멋대로 정한거잖나!"
그럼 지금까지 이 몸이 파트너라고 불러주는 것에 대해 영광스러워하진 못할망정, 그런 기분이었단 거냐? 순간적으로 분노가 확 솟구쳤다. 감히, 미래의 해적왕인 이 몸을?
"그렇다면 화끈하게 확실히 말해주마. 맞아, 사실이야! 네놈은 이미 칠무해인 이 몸 곁을 떠날 수가 없다. 그랬다간 당장에 죽은 목숨이란걸 너도 알고 나도 익히 알지. 그런데 정작 이 몸은 말이다. 어이...뭐하는 거야? 지금부터 내 말 똑바로 들어!!"
나의 솔직한 말에 어줍잖게 화라도 난 것인지, Mr.3의 머리카락 끝부분에 확 불이 타올랐다. 악마의 열매 능력이라도 쓰려는 듯 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을 감지한 것인지, 문 밖에서 우리가 큰 소리로 싸우는 것을 노심초사하며 지켜보고 있던 캐버디와 부하들 몇몇이 들어오려고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녀석들이 멋대로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쪽 손을 동강내어 문 쪽으로 보낸 후, 문고리를 단단히 틀어쥐었다. 그리고 손에서 밀랍을 만들어내며 당장이라도 싸울 태세를 하고 있는 Mr.3에게 일갈하기 위해 숨을 들이쉬었다.
"나는... 이 몸은 역시 네 놈이 행복해지는 편이 좋다고! 행복을 포기하긴 개뿔, 니 사고방식이 그따위니까 그렇게 밖에 생각 못 하는 거 아냐!!! 뭐...이게 네 자식의 진심이라곤 생각 안한다. 네놈이 술 취해서 괜히 지랄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깨고나면 또, 홍차를 마시며 허접스러운 책이나 읽다가, ‘아, 버기 왔나?’하면서 웃어주겠지. 평소처럼 말야!"
예상치 못한 발언에 놀란 것인지, Mr.3의 기세가 주춤했다. 흥, 자식.
"모르겠어? 네놈은 지금 충분히 행복하잖냐! 너는 이 몸의 곁에 있으면서 행복해질 수 있어. 왜냐하면... 이 몸은 대단하신 버기 님이니까! 그런 내가 특별히 갤디노 네놈을 파트너로 칭해줬으니, 이 몸이 해적왕이 될 때까지 확실하게 보좌하라고!! 최대한 행복을 즐기면서! 그게 앞으로 니 인생의 목표다. 알겠냐?"
더 이상의 반박은 받지 않겠다는 듯 콧방귀를 뀌고 뒤를 돌았다. ...만, 솔직히 아무리 이 몸이라도 그 자식이 대뜸 공격해오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임을 알기에 슬쩍 반격 태세를 갖추며 실눈을 뜨고 돌아보자, 갤디노는 이미 소파에 다시 털푸덕 앉아있었다.
"...뭐냐? 안 싸워?"
"푸하하... 내가 정말... 어이가 없다네, 어이가."
안경 뒤에서도 넘쳐흐르던 살기에 가득찬 눈은 어디로 갔는지, 잔뜩 누그러진 듯한 표정과 말투는 평소의 그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안경을 고쳐 쓰며 두꺼운 책에 정신을 집중하는 그에게 장난스럽게 말을 걸고 파트너라고 부르며 추근덕 대면, 전투 중일 때의 사디스트적인 면모는 전혀 보이지 않는 얼굴로 사뭇 진지하게 대답해주던 그와.
"뭘 믿고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내게 이런 말까지 들었는데도 조금도 꺾이지 않는 군. 모두가 자네를 신봉할거라는 그 굳건한 믿음이 정말...버기답다네. 그런 점을... 좋아하지만 말이네..."
마지막 말을 듣고 귀를 의심하며 그를 똑바로 마주보려 몸을 다급히 돌렸지만, 이미 그는 빠른 속도로 곯아떨어져있었다. 기가 차서 하, 하는 웃음이 나왔다. 젠장...그렇게 할 말 못 할 말 다 해 놓곤 잠들면 다냐고, 썩을 자식. 내일 엄청나게 놀려줄 테다.
...뭐 지금 생각해보니 이 몸도 화끈하게 쪽팔린 소리를 늘어놓은 것 같긴 하지만 말야...
그의 잠든 얼굴을 잠시 쳐다보고 있다가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을 풀자, 캐버디와 모디, 부하들 몇몇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캐...캡틴!! 괜찮으십니까! 갤디노 형님과 무슨 불화가...혹시 싸우시기라도...!! 헉, 형님이 죽으신건가요?!"
"뭐?! 이 바보 자식! 그냥 자는 거야!! 화끈하게 아무것도 아니니까 신경 꺼라. 선장의 일에 참견하지마! 그보다 저 녀석... 얌전히 침실에나 데려다 줘."
"ㅇ...옙!! 알겠습니다!!!!"
더 이상 참견하면 대포로 쏴버리겠다는 투의 살벌한 눈빛으로 째려보자, 그 자식들은 혼비백산하며 두셋이 한꺼번에 붙어 얼른 잠든 갤디노를 들쳐업었다. 괜히 그가 앉아있던 소파를 내려다보던 나는 방을 나서는 부하 녀석들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니네... 그냥 부르던 대로 3 형님이라고 불러라."
"네?"
"왜 갑자기 본명으로 부르고 지랄들이야, 니놈들? 빨리 가서 갑판에 써붙여! 캡틴 버기 이외에 저놈을 갤디노라고 부르는 자식은 화끈하게 사형이다!!"
"히익...! 아, 알겠습니다!!!"
하여튼 이놈의 멍청이들은 정도를 모른다니까. 후다닥 뛰쳐나가는 부하들을 한심하게 바라보고는 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동그란 창문 너머로 시원한 바닷바람이 휘몰아쳤다.
며칠 동안 그칠 일이 없었던 변덕스러운 그랜드라인의 태풍이 멀끔히 갠 것이다.
여담
초반에는 3버기를 좋아했지만, 나중에 갈수록 리버시블이 되어갔고 지금 만약 판다면 버기3을 팔 것 같다. 뇌꽃밭 쾌활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메가데레 공 x 열등감에 찌든 차분한 츤데레 수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ㅋㅋ 근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져보면, 이 취향 자체가 버기3에서 온 것 같음. 물론 아직도 리버시블이긴 하지만...(원래 리버스 절대 못보는 좌우 고정 인간이라서 이건 정말 특이한 케이스다)
웬만해선 한번 캐해석 잡힌 최애커플은 리버스 잘 못보는데, 3버기3은 참...내게 특별하다.
내 모든 취향의 근간이나 다름없고, 처음으로 정말 온 마음을 다해서 좋아해본 커플이었음.
원피스는 지금 다시 좋아하라면 못 좋아하겠지만...이 둘이 나온다면 또 좋아하게 될지도